황금신부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 시간에 "레모"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한국인 사부로부터 무술을 배운 미국인 주인공의 모험을 다룬 첩보물인데, 가라데 키드와 007을 섞어놓은 듯한 영화였다. 당시로서는 헐리웃 영화에 한국인이 등장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영화 자체도 제법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아직도 몇몇 장면은 기억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한국인 사부는 총알을 피하고 한 합으로 적을 제압할 뿐더러 물위를 걷기도 하는 절세의 고수이다. 그런데 고증이 너무나도 형편 없었는데, 중국식의 긴 젓가락으로 밥그릇을 든 채 식사를 했고, 외모도 한국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자는 엉덩이가 커야 아이를 잘 낳는다 둥의 대사를 듣고 있노라니, 미국인은 한국인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느끼고 있는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머리가 굵어지기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요즘 가끔씩 보게 되는 주말 드라마로 "황금신부"라는 작품이 있다. 공황장애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결혼생활을 기대하기 힘든 남자 주인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베트남 신부를 맞이한다는 재미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다만, 역시나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다는 한국 드라마의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불편한 점은,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속의 한국인을 바라보던 미국인의 시선을 문득문득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우선 베트남 신부인 진주 역할은 한국인 탤런트가 맡았다. 또한 도시의 중산층 가정에 젊은 엘리트의 신부가 베트남인이라는 데 대해 느끼는 부끄러움과 해프닝의 이면에는 한국인의 편견이 느껴진다. 그녀의 옷차림이나 베트남어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나중에 베트남에 방영될 때, 어린시절 내가 받았던 것과 동일한 느낌을 그네들에게 주지는 않았으면 한다. 여기에 베트남 신부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곰곰 생각해보면 충분히 사실적인 설정이라는 데에서 나의 불편함은 더욱 커진다.


어찌 보면 세계 무대에서 우리 나라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므로 기분좋을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모쪼록 올챙이 적을 잊어버린 개구리가 되지 말고,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다원적이고 성숙한 사회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by 양사나이 | 2007/10/16 00:17 | 라이프로그 | 트랙백(3)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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